3절~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And not only that, but we also glory in tribulations, knowing that tribulation produces perseverance; and perseverance, character; and character, hope.
(3절) οὐ μόνον δέ, ἀλλὰ καὶ καυχώμεθα ἐν ταῖς θλίψεσιν, εἰδότες ὅτι ἡ θλῖψις ὑπομονὴν κατεργάζεται,
(4절) ἡ δὲ ὑπομονὴ δοκιμήν ἡ δὲ δοκιμὴ ἐλπίδα
키워드: 환란, 인내, 연단, 소망, 기쁨(즐거워함)
묵상: 바울이 2절에서 ‘소망’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부터 이미 알아 봤어야 했다. 그에게 소망이란 한가한, 혹은 그다지 절박하지 않은 상황에서 로맨틱하게, 감상적으로 품어보는 정신의 유희가 아니었다. 그는 복음의 전파, 곧 사람들이 그리스도안에 담겨진 생명의 비밀을 알고, 구원에 이르며, 하늘의 부르심을 깨달아 알게 하는 일에 모든 생명을 걸었다. 울었고, 또 울었다.
고난을 참았다. 아픔과 따돌림과 배척과 눈물겨운 고생의 순례길을 견뎌냈다. 고난은 바울의 삶의 핵심이었다. 고난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그래서 그에게 있어 하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렬한 실재였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그분의 나라의 놀라운 체험을 경험한 바울. 그것은 어떤 아픔과 역경과 고난과 반대와 멸시와 박대로 ‘넉넉히 이기게’하는 하늘의 힘, 두나미스(dynamis)였다. 고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인하여 우리 삶에 고난이 없다면, 어쩌면 우리의 삶은 복음이 가리키는 바를 그대로 살아내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새삼스럽게 사역 일변도의, 일중심 일색의 삶을 강조하자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영광, 하늘의 생명, 하늘의 실재를 증거하고 전파하는 자로서 어찌 이 험한 세상과 그 안의 죄악의 바다속에서 고난을 맞닥드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아… 어찌하여 이 시대의 교회안에 복음으로 인한 핍박과 고통이 없는가? 어찌하여 나의 인생, 나의 하루 동안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파하기 위한 전도자의 신음섞인 기도가 없는가?
1절과 2절에서 바울은 믿음으로 얻는 의로움 à 하나님과의 평화 à 그리스도로 인한 은혜의 삶 à 영광을 기대하는 소망의 삶을 말하였다. 그리고 3절에서 환인연소의(환란-인내-연단-소망) 삶을 말하면서 다시 한번 ‘하나님의 나라의 실재를 경험한 자신’에게 있어 하늘을 아는 자로서의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마치 자기독백처럼 강조하고 있다 (**앞글자만 따면 “환인연소”이다!).
환란(tribulation:고통스런 복음의 핍박)을 당하면서 인내하는 것을 배웠고 (perseverance), 인내를 거듭하면서 연단의 시간을 통과하면서 믿는 성도로서 변함없이 일관된 하늘에 속한 시민의 인격 (character)을 형성하게 되었고, 그 과정의 결국은 ‘하늘을 향한 소망의 삶’이었음을 바울은 회고한다.
진정 바울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이 땅에서 겪는 복음전도자로서의 고통스런 환난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원어분석]
1. οὐ μόνον δέ ἀλλὰ καὶ: οὐ (not), μόνον (only), δέ (and), ἀλλὰ (but) // not only so but, 단지 그뿐 아니라
2. καυχώμεθα: καυχάομαι 현재 직설법 중동태 (deponent 동사)로서 ‘우리는 기뻐합니다’
3. ἐν ταῖς θλίψεσιν: θλῖψις (tribulation). 누르다(‘to press’)는 뜻의 동사인 θλίβω에서 유래한 명사. 성도의 고난은 믿지 않는 이 세상의 구조가 그를 crush하고, 소멸시키기 위해 짓밟고 누르는 것이다. 한편 tribulation이라는 영어단어는 헬라어 τρίβω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낱말은 문질러 닳게 하다는 (‘to rub’) 뜻이다. 어느 쪽을 보아도 세상은 믿는 성도의 삶을 고통스럽게 누르고, 문지르고 짓누르고자 하는 것이다.
l 그뿐 아니라, 우리는 환란 중에서도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뒤에 이어지는 분사구문은 이렇게 기뻐하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음).
4. εἰδότες ὅτι: 복수 1인칭 완료시제 능동분사구문 ((We) knowing that…),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데…
5. ἡ θλῖψις: 환란은
6. ὑπομονὴν: ὑπομονή (인내: patience)인 여성명사의 4격. 영어번역으로 추천된 단어를 보니 steadfastness, constancy, endurance 가 있다. 이것은 단순하게 어려움을 견뎌내는 모습을 넘어서서 진리에 대해 항상 ‘신실한 지속성’이 있는 태도를 가진다는 의미가 있다. ὑπομένω에서 유래한 명사형이다. ὑπομένω 는 다시 ὑπο와 μένω로 분리되는데, μένω는 영어의 (re)main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헬라어 어근으로서 ‘to remain, to abide (바꾸지 않고 어떤 상태를 유지하다)’라는 뜻이 있다.
7. κατεργάζεται: κατεργάζομαι 동사의 현재 중동태 직설법 형태. ἐργάζομαι (일하다, 수고하다 to work, labour, do work)동사에 throughout (완성의 aspectual meaning을 연상시키는 전치사로서 ‘내내’, -에 두루 걸쳐’)을 뜻하는 접두어 κατά가 결합된 합성동사. 단순히 만들어내다, 형성시킨다는 번역보다는 ‘완성해 내다, 완수하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해 보인다 (즉 단순히 인내를 만들어낸다는 뜻을 넘어서서 인내의 성품을 완성, 완결시켜낸다는 뜻이 강하다, accomplish/achieve your patience). **환란은 성도의 인내의 성품을 완성하는 영혼의 영양제와도 같은 것이다!
8. ἡ δὲ ὑπομονὴ: ἡ ὑπομονὴ (인내), δὲ (and)
9. δοκιμήν: δοκιμή (여성명사 4격). 이 단어는 어떤 성품을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증명의 과정 (proving, trial)’을 가리킨다. 이 증명의 과정을 ‘단련’, 혹은 ‘연단’이라고 할 수 있다. 성도가 온전한 인내로 환란을 이겨내면, 그는 어떤 연단의 과정. 곧 시험을 완성/완결한 셈이다. 그래서 환란은 인내를 온전하게 하고, 인내는 우리 삶에 찾아오는 연단. 믿음의 시험을 완결시키는 것이다.
10. ἡ δὲ δοκιμὴ: 연단은... 결국 연단이나 시련의 시간은 우리가 시작한 소망의 삶을 완전하고 온전하게 ‘완결’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자, 이 세상을 사는 성도가 따라가야할 믿음의 길이다.
11. ἐλπίδα: ἐλπίς
[적용]
l 바울이 당하였던 시련과 환란의 삶의 순간들을 생각해 보자.
l 나에게 복음의 전도자에게 찾아오는 환란과 인내와 연단의 삶이 있는가?
l 이 세상에서 당할 수 밖에 없는 전도자의 삶의 현실, 즉 환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도자로 세워 주실 것을 위하여 기도하겠는가?
바울은 환란을 통해 인내의 성품을 성취했고, 인내(성실하게 변함없는 믿음의 성품)를 통해 연단이라는 시험을 패스하였고, 그렇게 고난을 통과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하늘의 영광에 대한 소망은 비로소 완결되었다.
l 바울은 경험하였다. 은혜로 들어가 하늘을 보았고, 그 놀라운 영적 계시 앞에서 환란을 인내로 이겼고, 인내끝에 연단을 마쳤고, 그 결과 소망은 여전히 그의 것이었고, 그 소망은 그에게 고통중에도 ‘하늘을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했다.
바울처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성령님을 통하여 부어지는 아가페 사랑으로 가슴이 가득차고, 그래서 모든 환란고초를 마다하지 않게 되고, 인내를 완성하고, 시험연단을 완결짓고, 결국 하늘을 바라는 소망의 절정을 이룰 수 있는가?
고민하자. 더욱 고민하자...무엇이 나로 하여금 복음앞에 100%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가? 편안한 삶, 안락한 삶, 육신의 삶을 향한 지독한 집착....
성령님 앞으로 더욱 나아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