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19, 2011

의롭다 하신 자들은 하나님과 화평하다!!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Therefore, having been justified by faith, we have peace with God through our Lord Jesus Christ,
Δικαιωθέντες ον κ πίστεως ερήνην χομεν πρς τν θεν δι το κυρίου μν ησο Χριστο



4장에서 바울은 길고 자세하게 아브라함의 예를 들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우리가 할 일은 결국 하나님은 정말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고야마는 분이시다믿음을 갖는 것뿐이라고 바울은 강조하였다. 


아... 하나님이 정말 말씀하신대로 하시는구나!!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즉 말씀대로 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늘 많은 일을 해야하고 바빠야만 좋고, 적극적인 행동만이 먹고 살 길을 열어준다는 세상의 풍조의 측면에서 볼 때,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어쩌면  지극히 수동적인, 수용적인 태도이다. 


믿는다..라는 단어는 분명 동사이다. 동사는 행위를 표현하는 문법범주이므로, 능동형 동사로 나는 믿는다’라고  말하면 '믿는 것'조차 나의 '행위'의 일부인 것으로 착각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나는 믿는다'라고 말을 해도 여전히 믿음은 하나님의 전적 인도하심에 대한 우리의 지극히 '수동적인 고백이자 아멘'이다. 

그렇다. 믿음의 사람은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다. 그는 오직  "아, 주님... 주님만이 나의 전부이십니다…"를 정말 마음으로 한껏 동의하면서 (아멘...아멘! Yes Amen!) 말하는 사람이다.


고집많던 한 인간의 삶이 자신은 철저히 무용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자기 존재의 전부이심을 고백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기적의 일이 아닌가? 


그것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임한 믿음이었다 (e.g., 아들 이삭을 내어 드리는 행동속에 잠잠히 베어 있는) 믿음이었다그 믿음은 또한 바울의 믿음이기도 했다. 토라를 줄줄 외워대던 바울. 종교적 분노로 들끓던 어느 살기등등했던 날, 홀연히 다메섹 도상에서 죄인의 눈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예수의 영광을 체험한 바울. 그 영광으로 인해 그는 거의 10년동안 아라바 광야에서 머물러야 했다. 그 긴 묵상의 훈련시간동안 어릴적부터 암송해 온 무수한 토라구절들이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 것들이었음을 마침내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전도자가 되었다. 바울은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고, 자신의 삶속에 끝없이 침투해 들어오시며, 쉬지 않고 일하셨던 하나님을 보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결국 도달한 믿음의 절정, 아들을 바치면서도 하나님은 이 아들을 살리셔서, 별같이 많은 자손들을 낳을 믿음의 씨앗을 소멸시키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그 절정의 믿음을 바울은 언급했어야만 했다.

5장 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을 얻은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서 하나님과 평화적 관계 (더이상 원수의 관계가 아니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어 성경중 개역한글 & 개역개정에서는 의롭게 되었으니 화평을 누리자라는 청유형으로 (plural imperative)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원문의 의미와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 원문은 평화적 관계를 누리자가 아니라, ‘평화적 관계를 현재 이미 소유했다. 그 소유가 지속적이다라는 뜻이다.
그래서 5장은 하나님과 평화적 관계, 안정한 마음의 평온함( 더이상 하나님과 싸우지 않아도 되는)을 소유한, 고요한 믿음의 호숫가를 거닐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향한 권면이자, 선포이다. 하나님과 화목된 자들이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생명력을 통하여 화목되기 이전의 모든 죄의 사슬들을 하나씩 풀고 나와 '온전한 구원의 열매'를 향하여 전진하는 것이라는 것이 5장의 주제이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    Δικαιωθέντες: 의롭게 되었으니(Having been justified) – 복수 1인칭 수동분사구문이면서 시제는 aorist시제 (단번에 의로와지는 것을 말함). 의롭게 되는 은혜는 내 모습의 변화에 따라 점진적으로 성취해가는 것이 아니다. 칭의는 단번에 일어나 영원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회적 영적 사건이다
a.    δίκαιος (의로운)이라는 형용사는 명사 δίκη (정의, 의로움, 재판)에서 파생했고, 이 명사의 어근은 δεικνύω (눈앞에 드러나게 (증거를) 제시하다)라는 동사이다. 증거로 떳떳하게 어떤 사실을 내미는 행위는 재판이나 법적 송사에서 가장 중요한 절차이다. 이 증거로 인해서 누군가의 정의가 증명되고, 그 사람은 정의로운, 잘못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b.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통과하셔야 했던 것은 1밀리의 오차도 허용될 수 없는 정의와 불의함을 다루는 영적 송사였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로움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우리가 이미 죄값을 치르었다는 것을 증명하셔야 했다. 우리의 죄값지불은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을 통하여서이루어졌다. 그리고 성경은 신비롭게도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못박혔다고 기록한다 (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2:20절 말씀의 근거로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님의 신비로운 대속의 처벌사건인 십자가 사건과의 신비한 연합을 통하여 이미 처벌-처형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마귀와의 송사현장에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증거였다. 이 증거제시로 인해서 믿는자의 죄값이 치르어진 것이 확인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확인은 믿는자의 의로움을 말한다.

2.    ον (therefore): 따라서

3.    κ πίστεως  (from faith): 믿음을 통하여

4.    ερήνην χομεν (we now have peace):  우리가 화평을 가지게 되었다현재형시제

5.    πρς τν θεν:   하나님을 향하여 (towards, with)
6. δι το κυρίου μν ησο Χριστο  :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서 (6절의 키워드: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향하여서)

[묵상]
1.    하나님과 화평한다는 것의 의미 더이상 하나님과 원수가 아니다.
a.    이전에는 하나님과 적대적인, 하나님을 대적하는 진리를 거절하는 하나님과 그분의 나라의 원수로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같은 편이 되었다. 적군이 아니라, 아군이 되었다. 싸우는 사이가 아니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b.    나는 진정으로 하나님과 화평한 사실을 경험하였는가? 나는 진실로 하나님안에서 누리를 평화의 깊음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과 평화, 화평된 심령의 놀라운 기쁨을 나는 진정 아는가?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찬송의, 감사의 찬미와 노래를 나는 불러보았는가?
c.    만약 그렇지를 못하다면, 우리를 하나님과 화평케 하기 위한 의롭게 됨의 증거로 하나님께서 제시하셨던 십자가그 영원한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인 십자가와 예수의 피흘리심이라는 증거로 되돌아가야 한다.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울은 그냥 무턱대로 화평을 가졌다고 하지 않았다.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평화, 나를 평화롭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가능한 일이었다.
a.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하여 묵상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평화가운데 거하는 사람이다. 주 예수를 묵상하라.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인간에게 진정한 심령의 평화란 결코 없다


영혼의 평화를 맛본자여...그 평화를 반석삼아 그리스도의 부활(살아나심)과 같이 더욱 넘치는 생명의 일을 향하여 무수한 죄의 습관, 악습들로부터 구원을 이뤄가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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